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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산 상해문/상해거리 (차이나타운)
 작성자 : TOPMOTEL
날짜 : 14-10-10 11:02   조회 : 1,539    

  
  동구 초량동 부산역 앞 큰길인 중앙로 맞은편 화교학교를 중심으로 중국영사관(1884년 8월 설치)이 있던 자리를 구한말에는 청관이라 했다. 중앙동의 용두산 주위는 왜관이 있었고, 초량동에는 중국조계지가 설치되어 왜관에 대칭되는 말로 청관이라 한 것이다. 당시 주 위에는 중국(청국) 사람들의 점포를 겸한 주택이 형성되었다. 그 점포가 있는 거리를 청관거리라 했다. 그때의 청관거리는 초량 앞바다가 매축되기 이전이어서 청관거리 동쪽인 오늘날의 부산역 자리는 푸른 소나무가 우거지고 흰모래가 펼 쳐진 백사청송(白沙靑松)의 바닷가였다. 그 당시는 초량에서 영주동으로 가려면 청관거리를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. 이 청관거리 점포 에는 비단, 포목, 양복지, 거울, 꽃신 등 중국의 상해 등지에서 수입해온 상품이 많았다. 소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 쌓아두고 지방 상인에게 도매도 크게 했다. "비단장사 왕서방 마음이 좋아 띵 호와"의 노래 그대로 영남 지방의 혼수감은 이 청관에서 많이 나왔다. 그 러나 1900년대 이후 일본세력이 초량까지 밀려오자 청관거리도 그 빛을 잃어갔다. 광복과 한국전쟁이 일어나 미군이 진주하고 중앙동의 텍사스촌이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로 소실되자, 어느새 초량의 청관거리 일 부를 차지하게 되었다. 그에 따라 청관거리란 이름을 잃어가면서 텍사스거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갔다. 그때 여인들은 그 뒤 국제결혼 을 하여 이곳을 떠난 사람도 많다. 주둔 미군이 줄어들자,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외국선원과 미국군함의 병사들이 찾아들었다.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관 광상품거래의 명소로 바뀌어 갔다. 1990년대에 들어 공산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자 러시아의 선원과 보따리 장수들이 이곳을 찾아 상가 는 성업을 이루었다. 이 거리는 청국인에서 미국인, 외국선원, 그리고 이제는 러시아인들, 여러 외국인들을 거쳐 장사로, 환락가 이제는 관광상품의 명소로 역사의 장을 바꾸어가고 있다. [출처] 한국관광공사「대한민국구석구석」 여행지 소개정보 | 네이버 지식백과